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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신구의 역사

반지 (Ring)
반지
반지라는 뜻의 불어에는 두 가지가 있다. ''바그''와 ''아노''가 그것인데 바그는 보석이나 귀금속을 세공한 장식성이 강한 반지를 가리키며 아노는 결혼반지나 주교의 반지 등 계약과 상징의 의미가 있는 것을 말한다.
많은 장신구들 중에서 유독 반지만이 계약 의식의 관행이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상징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결혼반지, 약혼반지는 중세 때 유태인들의 관습에서 비롯된 것인데 그것이 크리스트교 의식의 관행이 되면서 점차 전세계로 확산되었다.
4500년경 이집트의 투탄카멘왕이 스캐럽모양의 금에 라피스라줄리가 박힌 반지를 만들었다. 이집트의 이러한 반지들은 보석 알이 크고 그 틀을 이루는 금속도 꽤 중후한 맛이 나는 편이다. 세공 솜씨가 매우 섬세해서 아름다우며 주로 주술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반지를 끼는 전통은 그리스, 에트루리아, 로마로 이어져 오는데 그리스·로마시대의 반지에는 마치 뱀이 손가락을 휘감고 있는 것 같은 디자인도 보인다. 로마 사람들은 반지를 매우 즐겨 끼었다고 하는데, 황제 헤리오가드라스(218∼222)는 같은 반지를 두번 다시 끼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로마시대는 반지로 신분을 나타냈는데, 원로원 의원은 금을, 일반 귀족은 은을, 노예는 철을 사용하여 만든 반지를 끼었으며, 실용성을 존중하는 스파르타에서는 철 이외의 반지 제작을 금지시켰다고 한다.

중세 문화를 대표하는 성직자들에게 그들의 지위와 덕을 상징하는 것은 역시 보석이었다. 특히 로마교황과 대주교의 반지로 다이아몬드와 사파이어를 산처럼 쌓아올린 호화로운 보석반지가 바쳐졌다고 하는데 보석을 좋아한 성직자에 관한 일화들은 중세 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프로테스탄트의 선구자 마틴 루터가 로마 교황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카타리나 폰보렌과 결혼할 때, 다이아몬드와 루비가 대비를 이룬 반지를 만들어 거기에 ''''신이 맺어준 관계, 사람이 이것을 풀 수 없음이니라'''' 라는 문구를 새겨 넣은 것도 유명한 일화다.
이와 같이 반지는 약속의 표시나 기념품으로 이용되어, 사진이나 기념 문구를 새겨 넣는가 하면 독을 넣거나 칼을 넣는 등 암살용으로까지 이용되기 시작하였다.
목걸이 (Necklace)
목걸이
목걸이는 영어로 네클리스(Necklace), 프랑스어로 꼴리에(Collier)라고 한다.
빨강, 파랑, 초록 등등 갖가지 색 구슬을 꿰어 만든 목걸이나 은과 동으로 만든 줄에 마노, 라피스라줄리 따위의 보석을 매단 펜던트 등은 이집트, 그리스, 로마 페르시아 등 거의 모든 문명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르네상스를 시초로 하여 서구 근대문명이 열리자 궁정복은 주로 가슴 위를 노출시키는 것으로 바뀌었고, 이에 따라 목걸이의 발달이 두드러졌다. 프랑스의 부르봉 왕조나 영국의 엘리자베스, 빅토리아 왕조 때에는 왕실 재산의 상징이 왕관과 목걸이의 질로 결정될 정도였다. 특히 양식진주의 발달은 전 세계적으로 진주 목걸이를 보급시켰으며, 그 외에 수정, 마노, 유리, 산호 따위의 구슬에 꿰어 만든 목걸이도 오늘날까지 크게 번성하고 있다.
귀걸이 (Earring)
귀걸이
이어링(Earring)은 이름 그대로 귀에 거는 고리로서, 프랑스어로는 부클 도레이유(Boucles Doreilles)라 한다.
서남아시아 지방에는 귀에 구멍을 뚫어서 고리를 끼워 늘어뜨리는 풍습이 있었는데 아시리아 조각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또한 모세가 신전을 세웠을 때 이스라엘 부녀자들은 귀걸이를 달았다는 기록이 있고, 이집트의 피라미드에서도 금/은 세공의 귀걸이가 발견되었다.
그리스에서는 보석을 붙인 다운링이 제작되었고, 로마에서도 악마를 쫓기 위한 것으로 다이아몬드 귀걸이가 사용되었다. 로마의 폼페이 유적에서는 한 쌍의 진주 귀걸이가 나와 오늘날에도 박물관 한 모퉁이에서 그 빛을 발하고 있다. 그리고 나사식의 귀걸이가 보급되기는 17세기 이후로, 다이아몬드, 진주, 비취, 루비, 사파이어 등을 박아 넣어 다운링 형태로 귀에서 내려뜨리는 방식이 발달했다.
브롯치 (Brooch)
브롯치
브로치(Brooch)는 핀이라고도 하며, 모피를 고정시키는 도구였는데, 가슴을 노출시키는 남방계 사람들이 목걸이를 사용했다면, 브로치는 북방 스칸디나비아 계에서 발전시킨 장신구이다.
그런데 모피에서 브로치가 천을 고정시키는 도구로 변하면서, 그리스인과 로마인에게는 왼쪽 어깨의 천을 고정시키기 위한 장신구로써 크고 둥근 금형이 사용되었던 것 같다.
한편 머리를 고정시키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 경우는 원통이나 원추형으로 끝이 바늘처럼 뾰족한 것과 포크 모양으로 갈라진 것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브로치에서 핀의 역할은 없어지고 판상의 장신구를 안전핀과 같은 부속품으로, 정장에 달도록 되어 있다.
팔찌 (Bracelet)
팔찌
팔찌는 영어로 암레트(Armlet) 또는 브레이스리트(Bracelet)라 하는데 그 어원은 라틴어에서 온 것이다.
석기 시대에는 돌 가운데를 둥글게 파내어 팔목에 끼는 돌 팔찌를 사용한 종족이 많았다. 고대 이집트인은 남녀 모두 구슬, 직물, 금, 은, 칠보로 만든 팔찌를 사용하였고 그리스·로마 시대는 뱀 따위의 동물이 팔을 휘감는 듯한 디자인으로, 금·은·동제가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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