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탐욕과 살인, 후회의 역사 "리전트 다이아몬드"
- 리전트는 프랑스 왕실의 가장 뛰어난 다이아몬드이며 또한 탐욕과 살인,후회의 이야기가 서막을 장식하고 있다.
이 다이아몬드는 1701년, 인도의 크리스나 강변 파티알광산에서 발견되었다.
세인트 사이몬에 따르면 이 돌은 무굴제국의 한 광산에서 일하던 노예가 발견하여 자신의 은밀한 부위에 숨겨 착복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신빙성이 있고 일반적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는 이야기는 런던의 보석상 스트리터가 저술한 "Precious Stone & Gems" (1884년)에서 이 돌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내용이다.마드라스의 포트 세인트 죠지와 포트 세인트 데이비드의 총독이었던 토마스 피트의 수중으로 들어가 "피트 다이아몬드"라 알려졌으며 훗날 "리전트"라고 불리게 된 이 돌은 한 노예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는 410캐럿의 이 커다란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도망칠 목적으로 자신의 발목에 상처를 내고 붕대 밑에 숨겼다. 그는 영국배의 선장에게 자신을 안전하게 노예신분을 벗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곳으로 데려다 주면 이 돌 가격의 절반을 주겠다고 제의했다. 선장은 흔쾌히 승낙하고 그 노예를 배에 태우고 봄베이로 향하던 중 폭풍을 만나게 되자 그를 바다에 던져 버렸다. 다이아몬드를 차지한 선장은 이것을 피트에게 1,000파운드에 팔았고 선장은 그 돈을 방탕하게 탕진하였으며 이후에는 강도짓을 하다가 후회와 정신 착란증세를 일으켜 스스로 목 매달아 죽었다. 그러나 피트는 이 돌을 선장에게 직접 산 것이 아니고 인도의 다이아몬드 상인인 잠천드에게 48,000파고다(당시의 인도통화, 약 19,200파운드), 즉 약 10만달러의 가격을 지불하고 샀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의 설명은 원래 인도에서 발견된 다이아몬드는 그 곳의 군주(nizam)의 소유가 된다는 법이 있어 그 질책을 피하려고 한 변명이라고 만은 볼 수 없다. 만약 이 돌이 훔친 것이라면 매일 밤마다 실시하는 광산주들의 철저한 검색을 어떻게 피했는지 이 미스터리는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다.
1702년, 토마스 피트는 그의 아들 로버트에게 이 다이아몬드를 유럽으로 가지고 가서 커트하도록 지시했다. 돌은 영국의 보석상인 해리스라는 사람에게 맡겨져 140.50캐럿의 쿠션 세이프 브릴리언트 커트로 연마되었는데 커팅하는데 무려 2년이 소요됐으며 그 비용도 약 25,000$이 들었다. 또한 그 원석에서는 많은 작은 돌이 커트되었으며 그 커트 비용은 35,000$ 이상이 들었다고 한다. 이 작은 돌 가운데 로즈 커트의 몇 개는 러시아의 피터 대왕에게 팔렸다. 단 한 군데의 아주 작은 결함을 지닌 이 "피트 다이아몬드"는 오늘날까지 알려져 있는 커다란 다이아몬드 가운데 가장 멋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리전트 다이아몬드는 루이 15세의 왕관에 박혀져 1722년 그의 대관식에 사용되었다.
진주와 다이아몬드 그 외 진귀한 보석들로 장식된 이 왕관은 왕관 제조자인 론데(Ronde)의 작업실에서 만들어졌다. 맨 위의 프러더리스 (fleur- de-lis : 프랑스 왕의 문장)위에 샌시 다이아몬드를 박고 이 거대한 리전트는 정면의 밴드 위에 세트되었다. 이 보석들은 대관식이나 그 외 다른 의식에 사용할 때를 제외하고는 걷어내고 일상시에는 유리복제품을 세트하였다. 왕관은 현재 루브르 박물관의 아폴로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다.
[이미지 출처 : 프랑스 루브르박물관]